1. '실교'(實敎)를 등지고 '권교'(권교 방편교)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대저 '법의 본래법'은 오직 '참된 하나'(眞一)일 뿐이요, 선·악, 시·비, 득·실 등의 일체의 차별법이 싹도 트기 이전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본래 움직임이 없는 '참 마음'(眞心)이요, 순일(純一)하고 여여한 '참 성품'(眞性)이며, '하나의 법계'인데, 다만 보는 사람의 근기의 차이와 지은 바 업(業)에 따라서 그 보는 바가 갖가지로 달라진 것뿐이다.
 
그리하여 범부의 마음 속에는 망령된 정식(情識)으로 분별된 온갖 망식(妄識)들이 뒤섞여서, ― 선(善)을 배제한 악과 악(惡)을 배제한 선, 옳음(是)을 배제한 그름과 그름(非)을 배제한 옳음, 긺(長)을 배제한 짧음과 짧음(短)을 배제한 긺, 빠름(促)을 배제한 느림과 느림(延)을 배제한 빠름, 내지 있음(有)을 배제한 없음과 없음(無)을 배제한 있음 등 ― 온갖 망정(妄情)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고 충돌하면서 도무지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이다.

근성이 영특한 사람이면 끝내 만법이 유식(唯識)인 도리를 철저히 밝혀서, 이 모든 차별법이 다만 '참된 하나', 즉 본래 여여부동한 '나의 참 마음'이 머무름 없이 모든 인연에 응하면서 나타난 허깨비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만사가 다만 곡두(幻)처럼 났다가 곡두처럼 사라져서, 시종일관 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서, 다시는 정식(情識)으로 대경을 분별하는 일이 영원히 쉬겠지만, ― 업장(業障)이 깊고 지혜도 없는 중생이라면, 막상 이렇게 '성스러운 뜻'(聖旨)을 알알이 밝혀 보인다고 하더라도 좀처럼 '바른 믿음'을 내지 못하며, 또 설사 '바른 뜻'(正義)을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끝내는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고, 따라서 그 무명의 뿌리는 다하지 않는 법이다.

그리하여 '진리'는 진정 할 말이 없는데, 곧 '참된 설법'(眞說)은 말할 것도 없고, 드러내 보일 것도 없는데, 그럼에도 어쩔 수 없어서,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 되는 팔만사천의 방편설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본분납자(本分衲子)라면 어찌 방편으로 베풀어진 언교(言敎)에 떨어져서 본래 여여부동한 자성불(自性佛)을 등지는 어리석음을 범하겠는가. 따라서 언제나 '실교'(實敎)의 '참 뜻'을 잃지 않는 수행자라면, 비록 세간에 살면서 길고 짧음이나 넓고 좁음, 빠르고 느림 등을 말할 때에도 어디까지나 여여한 '본래 지혜'에 의지하면서 온갖 차별법을 굴리기 때문에 '넓음의 본 성품'이나 '좁음의 본 성품'이 본래 '한 성품'(一性)이어서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따라서 비록 '넓고 좁음'이나 '많고 적음' 등이 서로 뒤섞이고, 나아가서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살고, 용과 뱀이 섞이더라도 전혀 어지러움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겨자씨 속에 수미산이 들어가는 도리>이니, 모름지기 참된 수행자라면 이제 시간 공간적인 모든 측정치(測定値)나, 심리적 물리적 일체의 차별법을 굴림에 있어서 더는 장애를 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대저 '참된 법'에는 본래 다툼이 없으니, 법성(法性)이 끝내 모든 상(相)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법(佛法)에는 참으로 알아야 할 만한 법도 없고, 이해해야 할 만한 법도 없으며, 기억해야 할 만한 법도 없고, 깨달아야 할 만한 법도 없어서, 끝내 결정적으로 말해야 할 만한 단 한마디의 말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빛깔'과 '소리'를 여의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ⅰ) 범부는 끝내 '빛깔'과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ⅱ) 이승(二乘)이라면 철저히 '빛깔'과 '소리'를 끊으면서 '회단의 과'(灰斷之果)를 구하며,
  ⅲ) 보살은 '빛깔'과 '소리'의 성품이 모두 비어서, 집착할 것도 없고, 여읠 것도 없다고 말하며,
  ⅳ) '부처 지혜'라면, 마치 찬란한 아침 햇살이 환히 밝아서, 단숨에 모든 어둠을 활짝 걷어내듯   이, 도무지 본래 아무 일도 없어서, 단 한마디의 말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학인이 어떤 공덕을 바라고 수행한다면 곧 유위에 떨어져서, 설사 아무리 훌륭한 경지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모두가 무상(無常)으로 돌아가서, 끝내 구경(究竟)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