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참된 공부'는 높고 수승한 자리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죽암규(竹庵珪)가 말하기를, ···

  『 털끝 만한 범·성(凡聖)의 정념(情念)도 다했거늘 어찌 나귀의 태나 말의 뱃속 엔들 들지 못하랴? 요즘 참선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다만 더 높이 오를 수 있는 길만 있으면 '더 높은 사람'이라」 하니, 만약 '수행'이 그런 것이라면 '불법'이 어찌 오늘에 이르렀으리요?
알고자 하는가? 건원(乾元)이 말하기를, 「오구(烏龜)가 날 채소를 먹고, 원숭이가 포대에 들어갔다. 분명히 '일 없는 사람'(無事人)들이 오직 이와 같은 장애(障碍)를 당하느니라.」 하였다. 여러분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가, 바라지 않는가?』 하고는 일갈(一喝)하고 불자(拂子)로 선상(禪床)을 쳤다고 한다.

거북(烏龜)은 바닷짐승인데 어찌 날 채소를 먹고살겠으며, 원숭이는 나무 가지 위 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사는 짐승인데 어찌 포대 속에 들어가 살겠는가. 그러니, 모든 것 다 놓고 놓은 것조차도 놓아서, 몰록 '일 없는 자리'에 들기를 희망하는 것조차도 결국은 '청정한 자성'(淸淨自性)을 어둡히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황금 부스러기가 비록 귀한 것이기는 하나, 눈에 들어가면 눈병이 날 뿐이라」는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협산(夾山)은 다음과 같이 송했다.

    '여섯 창문'(六根)을 가리지 않아도
    네거리
(四衢)엔 본래 자취가 없네.
   '배움'은 정오
(正午)에서 멈추지 않고
    뜻
(意)엔 현묘(玄妙)함을 세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