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법계연기(法界緣起)를 깨쳐야 한다.
     
   

'법계'(法界)란, 보통 <만법을 두루 함용(含容)한 '우주'>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 다. 그런데 기신론(起信論)에 보면 「'하나의 법계'란 곧 둘 없는 '한 마음'이다」 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곧, 이 <무변광대한 우주>가 바로 우리 중생들의 <한 찰나 '한 생각'>에 매어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진실이 그렇다면 고전적인 물질관이나, 존재론적 세계관, 즉 ― 고유의 특성을 갖고 '자체의 보존법칙'을 따르면서 저 바깥에 엄연히 실재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이른바 '절대공간', '절대시간'에 대한, 문자 그대로 절대한 고정 관념은 ― 이미 현대물리학에 의해 반증된 바이지만 ― 완전히 설 땅을 잃게 되지 않겠는가?
 
이미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도 경험한 바 있는 인류이기에, 다른 모든 거창한 이론은 접어두고, ―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온갖 법도 사라진다」 는 이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전혀 반론을 제기할 여지조차 없어 보이는, ― 실은 이것 역시 '닐스 보어'의 상보성원리(相補性原理)에 의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이지만, ― 때문에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라면, 사태는 급전직하로 반전되지 않겠는가? ― 「이 삼천대천세계는 중생의 정식(情識)으로 말미암아 중생의 마음속에 허망하게 나타난 '업의 그림자'(業影) 일 뿐이다」 ― 이 말은 '붓다'의 경이로운 '우주관'이 그 전모를 드러냄으로써, 범부들의 깨달음의 성품에 새벽을 앞당긴, 실로 놀라운 언명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법계'는 본래 텅 트인 허공과 같아서, 실로 티끌 하나 없이 말쑥하기만 한데, 다만 중생의 망령된 사량 분별 때문에 <온갖 이런 것과 온갖 저런 것>, 즉 하늘 땅 삼라만상과 일체의 유정 무정이 <중생의 마음 속>에 그림자처럼 투영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실상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천의 '중생'이 있으면 천의 '세계'가 있고, 만의 '중생'이 있으면 만의 '세계'가 있다는 뜻이며, 나아가 항하사 모래수만큼 많은 중생이 있으면 항하사 모래수만큼 많은 '세계'가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 요컨대, 이 세계는 본래 정한 성품도 없고 정한 모양도 없는데, 다만 중생들의 근기의 차이와 지은 바 업에 따라서 순전히 중생의 업식(業識)으로 요술처럼 지어진 것이 지금 면전에 펼쳐진 일체의 차별상인 것이며, 이 티끌 수같이 많은 세계가, 마치 한 방 안에 백 개의 촛불이 있어도 서로 간섭하는 일 없이 환히 비추듯이,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바로 '우주의 실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제 마음'에 비친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은 허망한 존재를 두고, 저 바깥에 있는 <물질적인 '실체'>라는 망상을 지으면서 지금껏 살아왔으니, 「중생의 마음이 철저히 뒤바뀌었다(顚倒)」는 말을 백 번 들어도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직 <만법이 오직 마음뿐인 도리>나 <마음이 그대로 '부처'인 도리>를 깨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또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아직은 사무쳐 체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마치 굵은 가시 밤송이를 통째로 삼키는 일만큼이나 난감한 이 화두의 실마리를 차근차근 풀어보기로 하자.
 
사실 '만법이 유식이니'(萬法唯識), '마음이 곧 부처니'(卽心卽佛) 하는 말을 그저 한 토막의 지견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이 말에 내재하는 엄청난 폭발성을 실감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런 경우를 대할 때마다 절감하는 일이지만, 이 '언어'가 그 훌륭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이것이 '인간'과 '진실' 사이에 자취 없이 교묘히 끼여든, 마치 절연체(絶緣體)와도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낭패감을 금할 수 없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때문에 초심자는 이 점을 특히 유의하여, 결코 남의 '말'에 떨어져서 '진실'을 미혹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초보적인 연기설(緣起說)의 이치를 밝히는 과정에서, 이 세상의 일체 존재는 낱낱으로는 '제 성품'이 없으며, 이 모두가 다만 하나의 '참된 성품'(眞性)이 인연에 감응해서 '나툰 바'(所顯)인 환(幻)과 같은 존재임을 알았다. 이제 이 이치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어떻게 될까. ― 이 세상에서 각기 독립적인 특성과 고유의 서로 다른 모양을 갖추고 있으면서, 저마다의 고유의 규범을 따라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체 존재가 실은 티끌만한 예외도 없이, 그 모두가 오직 '참된 하나'(眞一) , 곧 '한 마음'에 의지하면서 운용되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전혀 논리적 비약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일체 존재가 비록 허깨비 같은 존재이긴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참된 하나'를 머금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도 '불사' 아님이 없고, '부처'가 아님이 없는 것이다. 마치 모든 '물결'이 그대로 '물'이 듯이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일승법(一乘法)의 근거이다. 따라서 이 '법계'의 온갖 사물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록 천태만상이지만 이것들은 상호간에 밀접한 인과관계(因果關係)를 갖고 있으며, 어느 것 하나도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즉, 일체만유가 모두 '한 법계', 즉 '둘 없는 한 마음'에 의지하여 있기 때문에, '중생'과 '부처', '번뇌'와 '보리', '생사'와 '열반' 등이 다 서로 상대적이고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이 모두가 오직 '한 법'의 서로 '다른 이름'이요, '한 법' 의 서로 다른 '모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번뇌'가 그대로 '보리'요, '생사'가 그대로 '열반'이어서, 만유는 본래 원융무애(圓融無碍)한 '하나의 법계' 임을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화엄경에서는 일즉일체(一卽一切)요, 일체즉일(一切卽一)이라 하여, '하나'가 그대로 '온갖 것'이요, '온갖 것'이 그대로 '하나'라고 했던 것이다. ―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진실된 말씀이 없었던 게 아니고, 따라서 웬만한 사람이면 다 이 말을 들은 적이 있었을 터인데, 대개의 경우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그 명자(名字)만을 외었을 뿐, 이 말이 갖는 오묘하고도 놀라운 뜻을 깨달아 살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이제 더 비켜갈 여지가 없다. ― 지금 우리들 앞에 현존하는 모든 것, 그것이 유정이건 무정이건 간에 막론하고, 그 모두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고립된 '하나'가 아니요, 바로 그것들이 '하나'인 채로 '우주 전체'와 더불어 그 '분량'과 '수명'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하나'가 바로 '우주 전체'의 몫을 다 함용하는, 즉 '하나의 사물'이 그대로 '전체 우주'인 것이다. 거기엔 이미 '전체'와 '부분'의 구별도 없다.
 
따라서 '하나의 미진'(微塵)이 그대로 '법계연기'의 근본을 이루며, 이 '미진'이 바로 우주 성립의 '체'(體)요, '힘'인 동시에, 되돌아 이 '하나의 미진'이 곧 '전체 우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 만물은 각기 '하나'(一)와 '일체'(一切)가 서로 면면밀밀히 연관되어 있는 '겹겹이 다함 없는'(重重無盡) 관계이므로 이것을 '법계의 다함 없는 연기'(法界無盡緣起)라 하는 것이다. ― 이로부터 이른바 '화엄경'의 제호미라고 하는 십현문(十玄門)과 육상무애(六相無碍)의 이치가 설해지기에 이른 것이다.

이야말로 '연기설'의 극치로서, '우주 연기'의 주체를 어떤 '하나의 사물'이나, '진리의 본체'(理體)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사물, 나아가서 낱낱의 '미진'이 그대로 '법계연기'의 주체가 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미진'이나, '한 찰나의 한 생각'이나, 이 모두가 그대로 '우주 연기'의 '주체'요, '근본'인 것이며, 때문에 「우주 만유가 오직 그대의 한 찰나 한 생각에 달려 있다」고 설파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일체 만유는 모두 '나의 마음' 이 변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른바 '유심'(唯心)의 이치가 '법계연기'의 이치와 함께 최상승의 법문으로 일컬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결국 학인의 공부가 오랜 세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 성과가 없는 까닭은 바로 이 '하나의 법계', 즉 '한 마음'을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헛애만 쓸 뿐 성취가 없는 것이다. 모든 법이 오직 '제 마음'이 변해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 마치 황금으로 만들어진 그릇은 비록 그 쓰임새나 생김새가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오직 황금으로써 성품을 삼을 뿐, 달리 다른 '성품'이 있을 수 없듯이 ― 천태만상의 모든 법은 다만 '제 마음의 성품'을 보는 것일 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법의 평등'을 깨달아서 '참된 지혜'가 활짝 드러나는 순간이며, 만약 이렇게만 된다면, 다시는 이 '번뇌하는 몸'을 제쳐두고 '열반의 저 언덕'을 희망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시비득실(是非得失)에 얽매어 허덕이는 '중생의 마음'을 여의면서 '불도'(佛道)를 구하는 일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되게 공부를 지어 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한다. ― '미혹'과 '깨달음'은 이것이 '하나의 길'이요, '어리석음'과 '지혜'는 따로가 아닌 것이다. 온갖 것이 오직 '제 마음'에 비추어진 허망한 '업의 그림자'(業影)일 뿐이라면,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며, 무엇이 '존재'이고 무엇이 '공'이겠는가? 따라서 얻어도 얻은 바가 없고, 잃어도 잃은 바가 없음을 알 것이니, 그러므로 '한 마음'을 분명히 깨치면 만법이 다 고요해진다고 한 것이다.

이제 <모든 '인연'이 공함>과, <'불성'이 상주(常住)함>을 알았으므로 저절로 '말 길'이 끊어지고, '마음으로 헤아리고 더듬고 할 곳'도 사라져서, 이에 마침내 훤칠하게 '법계 연기'를 깨쳤다. 이제 모든 법은 몽땅 '하나의 법계'에 껴잡혀 있 는 것이므로, 다시는 '한 자리'에서 '한 자리'에 이르는 일은 없다. 다시 말해서, '불각의 자리'(不覺)를 여의고 '정각(正覺)의 자리'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다 오직 본래 청정한 '한 마음'의 근원에 모일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번뇌'와 '청정한 마음'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의 손바닥을 뒤집듯 할 따름이니, 모름지기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